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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Letter VoL.12] PEOPLE_박현서 지도변호사
작성자
리걸 클리닉센터
작성일
2023-03-14
조회
11
이 코너는 공익법률센터 사람들의 면면을 알아보는 People 코너입니다.
인터뷰어인 박선아 7기 공익조교(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가
공익법률센터의 박현서 지도변호사를 만나보았습니다.
Q1. 박현서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맡게 된 박선아입니다. 지난 동계 공익법무실습에서 지도변호사님으로서 박현서 변호사님을 뵙고, 이런 기회로 인터뷰를 진행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A1. 네, 안녕하세요. 저는 공익법률센터 지도변호사 박현서이고요. 2022년 3월 공익법률센터에 와서 일한 지 1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센터에서는 법률상담과 법률구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Q2. 어떠한 계기로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을 꿈꾸게 되셨나요?
A2. 이 질문 되게 어려운걸요?(웃음) 저는 처음부터 굳은 결심으로 '전업 공익변호사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저 공익 쪽에 관심도 많았고, 법대를 나왔다 보니 학부 시절부터 공익 활동하시는 변호사님들의 모습을 볼 기회가 많았어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인턴생활도 하고, 인권법 캠프 같은 것도 참여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힘들게 공부해서 전문성을 획득한 변호사가 됐는데 이 자격증을 나 혼자 편하게 먹고 사는 데만 쓰기에는 좀 아깝지 않나... 조금이나마 사회에 기여하면서 사는 것이 좀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한 선택 같아요.
Q3. 변호사님의 관심 분야는 교육과 노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공익 분야 중 해당 분야에 관련한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셨나요?
A3. 저는 부모님이 가라고 해서 별 생각없이 법대에 입학한 케이스라, 법조계 진로에도 큰 관심이 없었고, 학부 1학년 때 들었던 법 과목들도 너무 재미가 없어서 공부를 안 했어요. 그렇게 계속 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1학기 때 노동법 수업을 듣게 됐는데요, 처음으로 법 과목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뭔가 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지금의 주류적인 학설과 판례가 바뀔 수도 있고, 대법원 판례와 다른 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수업을 접하고 너무 즐거웠어요. 그래서 학부와 로스쿨에서 노동법 수업을 많이 들었고, 변호사시험에서도 노동법을 선택했어요.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도 여러 노동법 강좌를 찾아 들었고요. 그러고서 로펌을 입사하고 대표변호사님이 '너는 어떤 사건을 많이 하고 싶냐'는 질문을 꽤 해 주셨어요. 그래서 노동법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 했는데 마침 그 로펌에 노동 사건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 로펌에 있던 모든 노동 사건을 맡기 시작한 거죠.
교육은 입사 후 제가 같이 일했던 파트너 변호사님께서 교육 분야 사건을 많이 하셔서 자연스럽게 저도 교육 관련한 사건을 맡은 것이 계기였어요. 변호사가 자기 전문 분야를 획득하는 데에, 특히 어딘가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 경우에는 생각보다 우연적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어떤 펌에 틀어왔고, 어떤 파트너랑 일을 하느냐가 꽤나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Q4. 인터뷰를 준비하며 '박현서 변호사'라고 네이버 뉴스란에 검색을 하니, 변호사님이 2010년, 2011년 대학 재학시절에 하셨던 반값 등록금 집회와 대학 학칙 개정 운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혹시 이러한 경험이 공익변호사로서의 변호사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셨나요?
A4. 2011년 대학에서 반값 등록금은 학생 참여가 활발한 의제였고, 그래서 저도 열심히 참여했어요. '학생회 임원 선거에 나가려면 일정 학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 등의 구시대적이고 반인권적인 내용의 학칙 등 대학 자치에 관련한 이슈들도 대학에 많았고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학사회를 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이런 쪽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함께 공익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변호사님들과도 알게 되었어요. 그분들이 문제 제기를 함께 해주시고, 국회에서 토론회도 해주고, 기자회견도 같이 나와서 발언도 해 주셨어요. 도움을 많이 받았죠. 이런 경험들이 제가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예전에 선배변호사님들이 하셨던 것처럼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학생들 또는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 같아요.
Q5. 박현서 변호사님이 수행했던 사건 중 인상깊었던 소송에 대해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A5. 인상깊었던 소송 중 하나는 노동 관련 소송인데요, 변호사가 된 초반에 수행한 사건이었어요. 상가 건물에서 경비원으로 일하셨던 75세 고령 근로자 분이 있었어요. 이분들의 근로방식은 오전 6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6시에 퇴근하고, 그 다음날은 쉬는 24시간 격일제 근무였어요. 그 분은 건강에 안 좋은 야간근무와 교대근무를 하던 중, 건물 지하 경비원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시다 뇌경색이 발병하셨어요. 그 후로 경비원 일을 못하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되셨죠. 그런데 그 분이 근무하시던 사업장이 최저임금 적용 제외 승인을 받은 곳이 아니었음에도 급여가 월 105-110만원 밖에 안되었고, 최저임금 부족분에 대한 임금 청구 소송을 하게 되었어요.
건물주는 경비원의 근무시간이 오후 8시에 종료되었으니 최저시금을 지켰다고 항변하더라고요.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과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건물에 직접 가서, 상가 환경이 어땠는지 살펴보기도 했었어요. 그리고 입점 업소 영언은 다음 날 오전 1시에야 종료되고, 따라서 그 분이 담당하셨던 주차관리업무 또한 최소 다음날 오전 1시에야 종료됨을 주장해서 법원에서 인정받았어요. 결국 못 받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액수보다도 그 분이 오랜 시간 일해온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Q6. 공익적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A6. 전업 공익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은 일일 수는 있어요. 현실적으로 급여 문제도 크겠죠. 그리고 왠지 옆에 동기들은 검사, 로클럭을 준비하고, 대형 로펌에도 가고 하는데 나만 뒤쳐지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리고 '나도 로펌에서 일을 배워서 나의 무기를 갖고 나와서 공익활동을 시작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어쨌든 간에 저는 각자 어떤 진로를 택하든지 자기 현황에 맞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공익적인 활동을 하면서, 변호사로서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가도록 애쓰는 마음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로스쿨 졸업하고 바로 공익 전업 변호사를 한 것도 아니었고 저는 그냥 일반 로펌에서 일을 했으니까요. 그래도 로펌에서 원래 맡고 있는 사건 외에 민변이라든지 내가 자문을 해주는 단체라든지 이런 경로를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공익활동들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기는 했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잘 붙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각자의 여러 경험들이 자신의 단단한 뿌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학교 다닐 때 우리 센터에서 개최하는 활동들이나 아니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활동들을 특히 1, 2학년 때 많이 경햄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Q7. 변호사님이 이전에 근무하셨던 법무법인 향법, 율립은 민사, 형사, 행정 등의 다양한 일반 사건을 수행하면서도, 노동, 교육, 언론피해, 과거사 등의 분야에서 공익사건을 활발히 수임하는 로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주변에 공익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 중에서도 전업 공익변호사 단체는 아니지만 공익에 관심이 많은 업무환경을 바라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법무법인 향법, 율립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관련해서 로스쿨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으신가요?
A7. 저는 로펌에서 4년정도 일을 했는데요, 로펌에 다닐 때에는 꼭 공익사건이 아닌 일반적인 송무 업무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도 사무실 차원에서 하는 공익 사건들도 적지는 않았고요. 대신 제가 일했던 곳은 제가 일반적인 사건 외에 공익 활동을 하는 것을 지지하고 장려해 주기도 했었어요. 이런 점이 일반적인 펌들과의 차이점인 것 같아요. 다만 공익 활동을 한다고 해서 업무 로드를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원래 사무실에서 해야 되는 일을 하고, 자기 시간을 쪼개어 공익활동을 해야 하니까 어려운 점이 있을 수는 있죠.

Q8. 공익법률센터 소속 변호사로서의 삶이 궁금합니다. 센터에서 일하시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무엇이 마음에 드시나요?
A8. 펌에서 일한 지 4년차 정도가 되니까 스스로가 소진된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너무 바빴고, 사건에 대해서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일단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회사를 퇴사하고, 제주에서 두세 달 살면서 쉬었어요. 그 무렵 대한변협 취업정보센터에 공익법률센터 채용공고가 올라오더라고요. 센터에 대해서 알아보니 ‘여기에서 일하면 다시 가슴이 뛰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지원을 했고 다행히 채용이 되었죠.
센터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은 변호사 한 명이 수십개의 사건을 맡아서 모든 사건을 공들여 수행하지 못했던 일반 펌의 구조와 달리, 사건 하나 하나에 마음을 쏟을 수 있다는 점 같아요. 프로보노나 임상법학 등 학생들과 같이 사건을 하다 보면 소장 하나 접수하는 데 한 학기가 걸리잖아요.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사건의 쟁점을 소개하고, 소장작성방법을 교육하고, 당사자 면담을 하고 면담 내용을 정리하는 등 긴 호흡으로 제가 맡은 사건에서 진심을 다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또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적합한 사건인지와 정규 교과에서 배운 법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해 학생들과 같이 수행할 사건을 제가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Q9. 공익법률센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뜻깊었던 점이나 기억에 남는 점이 있으신가요?
A9. 저는 프로보노 활동이 신기했던 것 같아요. 프로보노는 학점이 주어지는 임상법학 수업과 달리 진짜 학생들의 자발적 관심과 참여로 이루어지는 건데, 프로보노가 개설되면 10분만에 마감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학생들이 와서 서면을 쓰고 과제를 내고 함께 방청을 가고 당사자를 만나는 등의 일을 참 열심히 참여해 주세요. 제가 센터에 오자마자 한 프로보노 활동은 결혼이주여성사건 프로보노였는데요, 몇 주 전 그 사건에 대한 승소 소식을 그 때 프로보노를 한 학생들에게 전해주며 판결문을 공유했더니, 학생들이 그거를 자기 일처럼 정말 기뻐해 주더라고요. 열심히 했었던 학생들한테 여러분들의 힘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려줄 수 있었던 것도 뿌듯했어요(이 때 프로보노는 모두 1-1학기 학생들이었습니다. 프로보노의 문은 학년 제한 없이 항상 열려 있습니다!)
Q10. 마지막으로 막 입학한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A10. 로스쿨을 다니는 동안, 조금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도 있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각자의 어려움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들을 여러 방법들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들을 재학 시절에 할 수 있도록 우리 공익법률센터가 만들어졌잖아요!(웃음) 물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 부담 등으로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너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학교에서 하는 공익테이블(점심시간에 밥 먹으면서 강연 듣는 것), 프로보노, 동계실무수습 등의 활동을 1학년 때 한 번 정도씩이라도 경험해 보면, 그러한 것들이 나중에 자기의 삶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버팀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어: 박선아 공익조교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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