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News Letter VoL.13] PEOPLE_김재왕 임상교수
이 코너는 공익법률센터 사람들의 면면을 알아보는 People 코너입니다.
인터뷰어인 강영찬 7기 공익조교(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가
공익법률센터의 김재왕 임상교수를 만나보았습니다.
Q1. 김재왕 교수님 안녕하세요.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간단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3년 3월부터 공익법률센터에서 일하게 된 김재왕입니다. 저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 11년 정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장애인권 관련 활동을 하다가 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Q2. 교수님께서는 졸업 후 곧바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공익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이러한 공익진로를 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시각장애가 있어서 로스쿨을 다니면서 장애인권 관련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일반적인 변호사 일보다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애인권 관련 활동을 전업으로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공무원이 되거나 공사·공법인에 취직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저처럼 전업 인권활동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은 공익활동 단체를 설립하려고 준비 중이었던데, 제가 제안을 받아 합류하게 되었고, 그 단체가 바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이었습니다.
Q3. 변호사 시절 장애인권, 차별금지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사건마다 다 각자의 특색이 있었어서, 꼽기가 쉽지는 않네요.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일하면서 장애인권 관련 여러 가지 사건을 다뤘는데, i) 놀이시설 탑승 거부, ii) 세칭 염전노예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청구, iii) 시각·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권 보장, iv) 장애를 이유로 한 공무원 임용시험 면접 탈락 등 사건이 기억나네요. 제일 길게 했던 사건은 위 i) 에버랜드에서 시각장애인들의 놀이기구 이용을 제한했던 사건입니다. 그 사건이 2015년에 시작해서 아직도 항소심 계류 중인데, 거의 햇수로는 8년인 셈이지요. 그렇다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도, 같이 늙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던 사건입니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권과 관련된 제 생각도 많이 변하게 되었어요. 여전히 사람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고 있고, 장애인은 무능력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대상이라고 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바꾸기는 결코 쉽지 않겠구나, 그렇다면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제가 할 일이 많고, 또 시간도 많이 걸리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은근히 많은 곳에서 보람도 느꼈습니다. 예컨대 같이 활동한 장애인권 단체 활동가들이 감사를 표할 때나, 소송 당사자들이 법정에 서서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조금이나마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4. 교수님께서 부임하실 때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선배님이셔서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떻게 학교로 다시 오기로 결심하셨는지 여쭙습니다.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11년 정도 일하다 보니 제가 갈수록 관성적으로 일하고 있지 않은가 성찰하게 되더라고요. '희망을 만드는 법'은 개인들의 후원으로 운영되었는데, 기존 사람이 나가야 새로운 사람이 합류할 수 있는 자리가 나는 상황이었습니다.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새로운 분이 활동할 기회도 제공하고, 한편으로 제 커리어에도 변화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에서 임상교수 공고를 내었고, 이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서울대는 제가 다니던 학교이기도 하고, 현재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제 공익활동 경험을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호사로 일하다 보며 느낀 점은, 대부분 변호사들이 공익과 인권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공익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그 분들이 변호사가 되었을 때 점차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 길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학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Q5. 최근 대형로펌 편중 현상이 어느 때보다 심해지면서 공익진로에 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공익변호사가 되기 위하여 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이것 참, 학교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밖에도 똑같은 것 같아요. 쉽게 말하자면 많은 수의 변호사들이 “돈이 되는” 일만 찾는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변호사라면 공익활동에 관심을 가질 책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업계의 시류를 보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대형로펌에 쏠리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공익과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 분들께서는 우선 자신의 생각을 주변에 알릴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알리다 보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를 통해 여러 인권단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네트워크를 쌓아가다 보면 조금 길이 보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주변에서 동지를 찾고 미래에 대해 고심해 보면 좋겠습니다.
Q6. 교수님 학부 전공이 생명과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법률가로서 일하거나 교수님으로서 가르치실 때 생명과학 전공지식이 도움이 되는 순간도 있으신가요?
사실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웃음) 저는 생물학 전공이 삶을 대하는 제 태도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든지, 삶을 성찰하는 관점이라든지 말이죠.
생물학의 핵심 철학은 ‘진화’입니다. 그런데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어요. 개체가 열심히 살든, 열심히 살지 않든 – 즉 그 개체의 노력과 관계없이 – 생존과 선택에 운이 상당히 많이 개재됩니다. 진화에 있어서 가장 큰 요인은 주변의 ‘환경’인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이 제 삶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잘 되더라도 이는 내가 잘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잘 되지 않더라도 이는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렇게 관점은 법률가로서의 삶을 조금 더 여유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Q7.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된 후에 그 취지와는 사뭇 달리 자연·이공계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 오히려 사법시험 시절보다 더 인문·사회계 학생들의 비중이 더 커졌다고 합니다. 이공계 후배들에게 법률가의 길을 권하고 싶으신지 여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변호사 업무가 제게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록 개인차는 있겠지만 충분히 자연·이공계 학생들에게 권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법학적 사고의 기본은 ‘논리’이고, 자연과학도 기초가 ‘논리’인 만큼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으니, 자연·이공계 출신 학생들도 충분히 법학을 잘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특허 업무는 이공계 출신들에게 오히려 더 열려있는 길이기도 하니, 후배들에게 권할 만한 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Q8. 교수님께서 공익테이블 강연에서 시각장애인으로서 법률 서적이나 강의 내용을 모두 음성파일로 변환해서 듣는 방식으로 공부하셨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졸업 후 변호사로 처음 근무하시면서 방대한 양의 서면도 보셔야 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도 음성화 작업을 거치셨나요? 만약 시각장애와 관련하여 바뀌어야 할 업계 관행이 있을까요?
제가 변호사 업무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는 민사소송에서 아직 전자소송이 도입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변론을 준비할 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모든 서류가 출력물로 존재하니, 제가 그 내용을 파악하려면 이를 스캔하고 그 이미지에서 문자정보를 추출한 다음 음성화 작업을 거쳐야 했습니다. 한편 서면을 송부할 때에도 출력 후 인장을 날인하여 우편으로 보내야 했는데, 그 날인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전자소송 도입 후에는 적어도 상대방 당사자가 제출한 서면은 곧바로 컴퓨터에서 음성으로 들음으로써 파악할 수 있었고, 제가 서면을 제출할 때에도 업로드만 하면 되니 비교적 수월해졌습니다.
여전히 어려운 점들은 스캔 이미지들인 것 같습니다. 문서 파일이 아닌 이미지 형태로 존재하는 서면은 아직 곧바로 읽지 못하고, ocr 프로그램을 통해 문자정보를 추출해야만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형사소송처럼 아직 전자소송이 도입되지 않은 소송절차는 여전히 진행이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혹시 판결문 열람신청을 해 보신 적 있을까요? 열람신청을 통해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으면, 보안을 이유로 이미지 파일로 제공됩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결국 접근성 문제가 주요한 것 같아요. 시각장애가 있으면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렇다면 웹이나 휴대폰 어플리케이션 등의 접근성이 뒷받침되는 것이 가장 개선이 필요한 부분 같습니다.
Q9. 법조인이 되는 길은 오랜 시간 인내하며 공부하고 또 노력해야 하는 참으로 고된 길인 것 같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중인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나 말씀이 있을까요?
딱히 조언이랄 것이 없네요. (웃음) 로스쿨 과정이 힘들긴 한데, 비단 이 분야뿐만 아니라 쉬운 분야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생명과학부 대학원에 잠깐 재학할 동안 보았던 박사과정 학생들의 공부량을 돌이켜 보면, 결코 적지 않았어요. 공부 외에 실험도 해야 하니 투입해야 하는 시간도 정말 많았고요. 투입 시간 및 공부량과, 그로써 얻게 될 사회·경제적 보상을 감안하면, 법조계는 그래도 소위 ‘가성비’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미래를 보고 견디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앞서 결국 주변 ‘환경’이 성패를 가르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이야기했는데, 로스쿨 환경은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학생 분들 모두 이 시기를 잘 견뎌서 훌륭한 법조인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인터뷰어: 강영찬 공익조교 (법학전문대학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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