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겨레 / 2022. 06. 07.] ‘로시오패스’ 이제 그만…로스쿨에 ‘공익’ 전하는 사람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6-07
조회
1076
 

“학생도, 학교도 변호사시험 합격에 신경 쓰다 보니 전체적인 학교 운영이 변호사시험 준비 체계로 운영됐어요. 지난 2018년에 로스쿨 도입 10주년을 맞아 서울대 로스쿨 내부 평가를 하면서 당초 로스쿨 설립 취지 중 하나였던 다양한 배경의 학생을 유치해 실무 교육을 강화한다는 취지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반성이 나왔어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공익법률센터 부센터장을 맡고 있는 소라미 변호사는 센터 설립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5월 공익법률센터 출범 3주년을 맞아 <한겨레>와 2~7일 사이 만난 변호사들은 로스쿨이 변호사 시험(변시) 통과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쟁적인 고시학원’에서 벗어나 실무 교육이 전제된 공적 인재를 기르는 교육기관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조인 양성 체계가 사법시험 체계에서 로스쿨 체계로 변한 지 올해로 14년째를 맞고 있지만, 변시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로스쿨이 ‘고시학원’으로 변해간다는 평가가 계속 나오고 있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지난 2012년 시행된 제1회 변시 합격률은 87.1%(응시 1665명·합격 1451명)에 달했지만, 2022년 시행된 제11회 변시 합격률은 53.6%(응시 3197명·합격 1712명)로 급락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며 로스쿨 학생들 사이에선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학점과 변시 합격에 몰두하는 ‘로시오패스’(로스쿨+소시오패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오진숙 변호사(서울대 로스쿨 공익법률센터 지도변호사)는 “사법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으로 제도를 변화시킨 목적 중 하나는 법적 지식만 충만하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법조인들의 문제를 개선하고 공적 마인드를 갖춘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것이었는데 변시 합격률이 떨어지면서 국내 로스쿨들이 고시 학원화되고 공익활동을 경험한 법조인 양성은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로스쿨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 2019년 실무 교육을 담당하는 리걸클리닉센터에 이를 전담할 상근 변호사들을 교원으로 배치하고, 이름을 공익법률센터로 바꿨다. 현재 총 9명의 변호사가 상근으로 배치돼 학생들에게 실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3년간 학생들은 공익소송에 직접 참여하고, 공익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실무능력과 ‘공적 마인드’를 갖춘 법조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개소 이래 명예살해 위협에 처한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소송, 카카오 비대면 대출 피해 소송 등에 서울대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승소를 이끌어내는 등 지금까지 총 51건의 법률구조활동을 수행했다. 법적 지원이 필요한데도 비용과 인력 수급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공익단체에 파견되는 ‘공익펠로우’로는 현재까지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한 저연차 변호사 등 5명이 선발됐다. 소라미 변호사는 “2019년 개소 당시 무료법률봉사(프로보노) 활동이 1건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엔 13건으로 대폭 늘었고, 참여한 학생들도 65여명 정도에 이른다”며 “프로그램을 확대할 때마다 학점과 상관없는 이걸 누가 할까 하는데도 항상 정원이 꽉 차 학생들이 생각보다 공익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학생들이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성과도 내면서 인하대에서도 올해부터 서울대처럼 실무 교육 전담 교수를 채용하고 본격적으로 실무 교육 및 공익활동 강화에 나섰다. 이러한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퍼지기 위해선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진숙 변호사는 “리걸클리닉(실무교육)이 활성화되면 학생 교육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을 위한 법률 구조 기관 역할도 맡을 수 있지만, 지역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칠 공익변호사가 없는 실정”이라면서 “각 지역 로스쿨마다 상근 공익변호사를 채용해 학생들과 함께 공익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국고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해 지난 2021년부터 ‘공익펠로우’로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 피해자 법률 조언 및 상담소 내부 법률 검토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이도경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로스쿨이나 로펌 등에서 신입변호사를 적극적으로 공익단체에 파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열악한 재정 탓에 꼭 필요한 상근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는 시민단체들에 로스쿨 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