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23.5.9./ IT조선] "정당한 저작권 보상 정착돼야 콘텐츠 산업 발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5-10
조회
86

"웹툰업계의 선인세(MG) 제도는 이번 작품에서 전부 갚지 못하면 다음 작품으로 갚아야 하는 고리대금업 형태입니다. 작가는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조회수가 무슨 기준인지도 모릅니다. 페이지를 클릭한 사람 수인지 유료 결제를 하고 작품을 감상한 사람 수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물어봐도 영업비밀이라고 알려주지 않습니다."(정곤지 웹툰작가노동조합 운영위원)

"창작자가 작품을 주도적으로 기획·개발하는 작품에 업계가 지불하는 비용이 전혀 없습니다. 과거에는 제작사가 기획하는 작품이 없거나 질이 떨어져 창작자가 직접 기획하고 개발하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창작자가 기획한 작품이 제작사가 기획한 작품과 경쟁해도 승산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창작자가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작품을 기획해도 시장에서 선택받을 확률이 낮아 도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박현진 한국영화감독조합 부대표)


'창작노동의 정당한 보상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웹툰작가노동조합

우리나라는 창작자가 창작물에 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그림책 ‘구름빵’,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만화 ‘검정고무신’의 故 이우영 작가 등 업계도 다양하다. 故 박환성·김광일 독립PD 사건을 통해 독립PD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공정한 방송 제작 관행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사례가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오픈넷, 한국영화감독조합(DGK), 웹툰작가노동조합이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창작노동의 정당한 보상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배경이다. 이번 토론회에는 영화·웹툰·출판 관련 업계 창작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여러 업계에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한 이유를 주로 다뤘다. 이들은 또 창작자의 정당한 보상을 보장해야 K콘텐츠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작품 이용하면 창작자 보상 있어야"


창작자의 정당한 보상은 저작권이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대전제에서 시작한다. 저작권이 작품을 창작한 사람에게 전속되는 권리라는 것이다. 이런 정당한 보상은 국내 음악 저작권 시장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노래방에서 한 곡을 불러도 창작자에게 보상이 돌아가서다. 다른 문화콘텐츠 업계에서도 음악업계처럼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현진 DGK 부대표는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이 필요한 이유는 정당한 보상이 저작권의 ‘최저선’이라고 강조했다.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제작사와 계약할 때까지 무임금 기간을 버텨내야 한다. 정당한 보상은 그 기간을 감당할 체력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그는 또 이런 인식의 연장선으로 저작권 표기를 ‘copyright’가 아니라 ‘Author’s right’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opyright과 Author’s right은 우리말로 모두 저작권이다. 차이는 Author’s right에 copyright에서 보장하는 권리뿐 아니라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위해 추가보상을 청구할 권리’가 포함된다.

박 부대표는 "영화감독과 작가의 계약은 정기적이지 않은데다 다음 계약 여부와 시기를 예측할 수 없다"며 "정당한 보상이 제도화돼도 유럽처럼 창작자 수입 90%는 신작 계약에서 나오겠지만 정기 수입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창작자의 생활 안정에 확실한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일시적 보상금 형태로는 부족


음악을 제외한 국내 콘텐츠업계가 모두 창작자를 위한 정당한 보상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웹툰업계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광고 수익을 창작자에게 분배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2013년부터 PPS(Partners Profit Share)라는 제도를 통해 이를 실천해왔다.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하단 광고(뷰어엔드) 수익을 올해 초 처음 분배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런 수익 분배가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정곤지 웹툰작가노동조합 운영위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위해 ‘수익 전산 통합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은 "카카오엔터의 수익 분배는 ‘창작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기한이 정해진 시혜적이고 일시적인 보상금이다"라며 "창작자는 어떤 방식의 수익 발생 분야가 생겨도 안심하고 저작권 수익을 분배받을 수 있는 확고한 체계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수익 전산 통합망을 분야별로 구축해 저자(Author)를 비롯해 수익 분배 계약을 체결한 모든 주체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수익이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발생하는지와 작품 창작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공식 앱 저작권료 지급내역서 화면. /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과거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산 투명화 필요

수익 전산 통합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정산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유통사(제작사 또는 플랫폼)가 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매출 규모가 어떻게 산정됐는지 계약 당사자가 모두 알아야 분쟁 없이 계약에 따른 보상이 이뤄진다. 이는 그간 여러 콘텐츠업계에서 발생한 불공정행위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성상민 작가노동조합 준비위원회 위원(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출판업계는 온·오프라인 판매 부수 측정이나 관련 정보 공개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며 "2차 창작 등 부가 권리도 명문화되지 않은 관행을 중심으로 계약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범유경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정산단계에서 유통사업자가 창작자를 기망했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 신화’나 소설 ‘태백산맥’ 사건은 창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다"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정산 관련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웹툰 상생협의체 협약문에 표기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정당하고 투명한 보상 정착 돼야 산업 발전"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특히 정당한 보상 제도가 정착하고 정산 과정이 투명해져야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현진 한국영화감독조합 부대표는 "경기 불황으로 투자가 정체하며 신작 제작의 기회가 줄어들 때마다 창작자는 사실상 일자리를 잃지만 이럴 때 콘텐츠 이용량이 증가한다"며 "창작자에게 주어지는 정당한 보상금은 창작자가 불황을 버티게 하고 산업 전체로는 기획개발 자금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정곤지 웹툰작가노조 위원은 "저자를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자연인만으로 한정해야 한다"며 "저작권을 법적으로 뺏기는 일을 막고 저자를 위한 정당한 보상 제도가 정착되면 유통 구조 쪼개기를 통한 수익 편취나 2차 판권 착취 같은 문제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확고한 저작권 보장을 통해 창작자의 권익을 향상하면 창작자의 다양한 시도를 낳는다"며 "콘텐츠의 다양성은 곧 산업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