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열람실에 있다 보면, 눈앞의 공부에서 도피하기 위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입학 직후 한 학기를 판례법리 탐독보다는 자아성찰의 시간으로 보내며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가만히 앉아 공부하는 것이 절대 제 적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S/U 제도가 폐지된 상황에서 1학년 2학기 전공필수 5과목이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에도 공익조교에 지원한 이유는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소 부담스러운 일정이 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미래의 내가 공익조교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시간에 공부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 남들만큼 공부하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에 스트레스만 받으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실무를 배우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어요? 

 그렇게 지원서 막차를 탄 결과, 감사하게도 8기 공익조교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공익법률센터 내부 구조를 안내받고, 교수님들과 변호사님들께 자기소개를 하고, 조교 업무 공간인 별관 회의실에 앉아 처음으로 실제 의뢰인의 법률상담 요청을 받아본 일련의 일들은 몇 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소감문을 작성하기에 앞서 노트북의 자료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새삼 공익조교로 활동하는 210시간 동안 참 많은 사건을 만났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난민·장애 분야의 업무를 많이 했는데, 덕분에 출입국관리법·장애인차별금지법과는 굉장히 친해진 것 같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국적법·전기사업법 등 기본법 공부만으로는 만나기 힘든 개별 법령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었고요. 기존 소송기록도 풍부하게 제공해 주신 덕분에, 민사·형사·행정 등 온갖 분야의 소송에서 소장·준비서면·참고서면 등 온갖 종류의 서면을 원하는 만큼 읽었습니다. 공익테이블 등 공익분야 강연 참여나 프로보노 활동도 업무시간으로 인정해주셔서, 강연도 듣고 활동도 하고 업무도 하는 일석이삼조 까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자리에 오래 붙어 있지 못하는 성격만 보더라도 짐작하셨겠지만, 원체 활동적이고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탓에 활동하는 내내 지도변호사님을 시달리시게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드려요. 그리고 저는 배은망덕하게도 바로 이 지점이 공익조교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익조교에게는 일반적인 학생과는 달리, 각 분야의 전문가이신 변호사님과 교수님을 귀찮게 할 합법적 권한이 주어진다고나 할까요? 관심 분야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일이 없다면 일을 더 달라고, 또는 기록을 더 보고 싶다고 요청하고, 궁금한 점이 있는데 설명해 주실 수 있느냐고 여쭤보면 지도변호사님은 다 들어주십니다. 원한다면 조교 일을 무한정으로 열심히 할 수있어요! 자신의 열정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수험 법학보다는 조교 업무가 수천수만 배 재밌습니다. 공익분야는 판례가 많이 축적되어 있지 않아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고, 따라서 파고들자면 끝도 없이 파고들 수 있기 때문에 시간도 잘 갑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센터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니 시원섭섭하네요. 제가 조금이나마, 어떤 식으로든 공익법률센터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봅니다. 법률가의 업무답지 않게 창조적인 공익분야의 특성을 담아, 자유분방한 방식으로 소감문을 작성해 보았는데 느껴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법학적 소양을 갖춘 소감문은 함께 활동했던 8기 이현아 조교님께서 잘 작성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공익조교 지원을 망설이면서 이 글을 읽으셨다면, 저처럼 일단 도전해보시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아, 해외 입법례나 판례 동향 리서치를 위해 최소한의 영어 실력 또는 실력 있는 번역기는 미리 구비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공익법률센터 구성원 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