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2022.03.24.] 2022년 제1회 공익테이블 개최 (부제 :전쟁과 학살, 법률가로서 대면하기-임재성 변호사)
2022년 3월 24일 (목),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는 "전쟁과 학살, 법률가로서 대면하기"라는 주제로 2022년 첫번째 공익테이블을 개최하였다. 이번 강연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국제 정세를 반영하여 마련된 자리로 법조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전쟁과 학살을 다루었다.
연사로 초청된 임재성 변호사는 "평화"를 위해 법조인으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와 법조인의 사명감을 이야기하면서 본인이 걸어온 길을 담담히 풀어냈다. 전쟁의 가해자로서 전후(戰後) 마땅히 해야할 일과 피해자의 피해보상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특히 피해자의 구제에 있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쉽게 풀어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일제시기 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 등 주로 전쟁 피해자를 대리한 임재성 변호사는 평화에 대한 사회적 연구와 담론이 필요하지만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황을 설명하였다. 공익법률센터는 앞으로도 예비법조인을 위한 공익진로 개발과 사회적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기 위한 다변화된 공익테이블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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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1회 공익테이블 소감문
작성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3기 박선아
고개를 많이 끄덕이며 강연을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슬펐고, 어떤 부분에선 씁쓸했고, 어떤 부분에선 뜻 모를 웃음이 나왔습니다. 강연 내용 하나하나가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그 이유의 반절은 동물학대와 살해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 비건지향을 하기 때문이고, 다른 반절은 평화 담론에서 얻었던 온 숨통 트이는 생각의 전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연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5살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뉴스에는 이라크전 소식이 나왔습니다. 어린 시선으로 보는 정치권의 움직임과 어른들의 반응은 혼란이었습니다. ‘이라크인들이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데, 뉴스에서는 국익을 이유로 한국군을 파병하는 결정을 옹호하고, 주변 어른들도 ‘어쩔 수 없다.’, ‘잘 한 결정이다.’라고만 반응했습니다. ‘나라가 강해지고 안전해지는게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걸까?’라는 도덕기준의 혼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혼란에서 뭐라도 찾고 싶어 글이란 글은 닥치는 대로 읽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찾고 한 생각은 ‘다행이야. 그게 아니구나’였습니다. 스스로 총을 들지 않기로 하는 선택이 존재한다는 것이 숨통 같았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한다는 논리로 살지 않을 수 있고, 세계의 모두가 무기를 내려놓는다면 전쟁이 끝난다는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처음 접한 해당 기사의 인물이 변호사님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대학 1학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를 벼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병역거부를 하고, 감방에서 꼭 그에 대한 박사논문을 쓰겠다던 그 친구의 인생계획은,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후로 백지가 되었습니다. ‘와! 나 감방 안가도 된다!’라고 외친 이후 그 친구는 저의 로스쿨 입시 동료가 되었습니다. 양심과 평화와 자유의 문제를 말할 수 있는 법의 가능성에 걸어보고 싶다는 이유로 한 진로선택이라 들었습니다.
임재성 변호사님은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위를 하고 글을 써도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전쟁과 학살에서 법률가의 역할을 말하러 나왔지만 법률가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많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고 말하셨습니다. 그치만 제가 강연에서 배운 것은 폭력 행위가 소강된 이후 ‘정의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법률가의 역할이었습니다. 변호사는 재판에서 피해자를 대변할 독점적인 지위를 가집니다. 일제시기 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과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사건에서 재판정을 통해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쓰일 수 있었고, 그렇게 바뀌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평화를 상상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일제시기 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을 접하기 전에는, 강제징용은 제가 배웠던 역사책에서 가장 무력하게 끝난 사건이었습니다. ‘전쟁에 강제동원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근찬의 <수난이대>에서처럼 울분을 삼킨 채 조용히 살다 갔으며, 박정희는 한일협상에서 청구권을 포기했다.’가 제가 배운 사실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역사선생님은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민족의 원통함을 기억하고, 일본보다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렇게 덮인 줄로 알았던 사건에서 결국 ‘개인으로서 원고가 해당 기업에 가지는 청구권이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 판결은 국가 간 힘의 논리라는 이유로 개인의 목소리가 묵살될 수 없다는 증명 같았습니다. 임재성 변호사님은 강연에서 “법률가로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시점은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고 회복했을 때.”라고 말하셨습니다. 전쟁 피해자 개개인들에 대한 피해회복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야 그 전쟁이 부당했음이 인정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전쟁이 정의로운 행위가 아님이 증명될 때에야 침공국의 시민사회는 침략전쟁을 다시 수행하지 않기 위한 논의를 할 수 있고, ‘약해서 피해를 당했다.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서사가 되풀이하며 응전을 준비하던 피해국의 시민사회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 인근에는 대한민국 고엽제 전우회가 있었습니다. 베트남전에서 있었던 고엽제 피해를 배상하라 말하면서도, 좌익 척결과 북진통일을 내건 단체였습니다. 국경일이면 그 곳 할아버지들은 군복을 입고 모이셨습니다. 역사책에서 베트남전은 외화벌이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한국군이 수행한 전쟁은 무엇이었을까요? 한국의 담론에서 그들이 베트남에서 수행한 일에 대한 서사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고기가 가축동물로 만들어지는 것을 알지만, 가축동물의 사육과 도살에 대한 서사는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직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배상 소송으로 인해 그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민간인들이 당한 피해가 숙고된다면, 한국인들 또한 베트남전이 한국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고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연을 들으며 전쟁에서 멀어지는 방법은 정말 더디지만, 국가 간의 힘의 논리와 관계없이 일어난 가해는 반성되어야 하며, 피해는 회복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쌓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의 해결을 당위와 가장 가까운 재판정에서 촉구할 수 있는 법률가의 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